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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인터넷

(주)큐닉스컴퓨터, IMF때 사라진 안타까운 기업

by 연제(硏齊) 2022.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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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큐닉스컴퓨터, IMF때 사라진 안타까운 기업 

요즘 핫한 JTBC의 금토일 드라마 "재벌집막내아들"의 1997년 IMF 배경으로 등장하는 여러회사중에서

"뉴데이타테크놀로지"라는 회사가 나온다. 1995년을 기점으로 묻지마투자가 기승을 부려서 활황장

이였다. 오늘은 그 시절 내가 경험했던 한 회사의 이야기 이다.  1992년 고려씨스템이 HH그룹의

파산신청에 의해 없어 지면서 나는 (주)규닉스컴퓨터로 재취업을 했다. 당시 큐닉스컴퓨터는 우리나라

레이져프린터의 선도 기업이였으며, 한국HP와 함께 양분된 프린터 시장을 이끌던 시기였다.

 

1995년 윈도우 3.1에서 윈도우95가 발표 되면서 새로운 컴퓨팅 환경이 바뀌면서 우리나라 프린터

시장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 하였다.  소위 WY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수 있다). 그동안 텍스트 환경에서 그래픽환경으로 바뀌면서 윈도우에서 구현하는

모든 글자는 어떠한 것도 다 만들어 낸다는 스케일러블폰트가 내장 된 것이였다. 즉, 텍스트 환경에서

글자크기가 제한되었던 것이 무제한으로 크기가 커 져도 아름답고 매끄러운 글자를 만들어 내는 것

이였다.  이 장벽은 많은 프린터 제조업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준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큐닉스컴퓨터의 기술력을 알수 있는 제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QLBP SF III라는 제품이다.

레이져프린터에 제품폰트를 내장해서 아래한글에서 보내는 어떤 글자도 다 매끄럽게 출력을해서 

톱니바퀴처럼 인쇄되는 아날로그 감성의 글자를 다 매끄럽게 인쇄 해 주었다.

제조년월일이 좀 안보여서 아쉽지만, 이 제품은 1992~1995년 사이의 제품일 것이다. 

큐닉스컴퓨터가 1997년 IMF때 폐업 했으니... 

1995년 윈도우95가 발표 되면서 우리나라이 인터넷 보급도 활발하게 발달하여, 온라인으로 제품을 살수 있는

지금의 전자상거래가 발달되게 이르렀다.  이때 코스닥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나면서 상장과 동시에

주식을 팔아서 거대한 자본을 챙긴뒤에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카오뱅크 직원들이 우리사주를 30,000원에

사서 올해 매각할수 있는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25,000원에 오르락내리락 하는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퇴사를 해서 주식을 판 직원들은 한몫 단단히 챙겼겠지만, 아직도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출금 갚느라 고충이 심할 것

이다. 

 

큐닉스컴퓨터는 마이크로소프트 지분도 어느정도 있었을 정도로 이당시에 IT업체로서는 최고의 컨디션 이였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법인이 설립되면서 그 지분도 다 팔고, 홀로서기를 했어야 했는데, 제2금융권 회사를 설립했다.

재벌집막내아들의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처럼, 이당시에 금융이 대세인것을 알았을까 ?  하지만 큐닉스파이넨스

는 IMF복병을 만나 우리나라 제2금융권이 대거 사라지는 폭풍의 격랑을 피하지 못하고, 모회사인 큐닉스컴퓨터까지

폐업을 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된 것일까 ?  1992년 큐닉스컴퓨터에 입사를 하고 나니, 대표이사의 

경영방침이 기술우선주위 였다. 제품이 좋으면, 굳이 마켓팅이나 영업을 하지 않아도 팔린다는 기술우월주의자 였다.

나는 태생이 영업사원인데, 이런 마인드의 회사에서 오래 다닌다는것을 상상해 보니, 끔찍 했다.  그래서 1992년 9월

딱 9개월만 다니고,  아는분과 독립을해서 큐닉스컴퓨터 대리점을 하게 되었다. 큐닉스컴퓨터의 좋은 제품을 회사

내에서 팔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차라리 독립을해서 좋은 제품을 더 많이 파는것이 유리하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립한이후 우리나라 거의 50%대학에 큐닉스컴퓨터의 레이져프린터를 독점하다시피 판매를 했다. 그렇게

5년간 성장을 했는데, 큐닉스컴퓨터가 부도처리 되면서 우리회사도 어려움을 격을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삼성전자 B2B대리점 계약을 해서 삼성전자 컴퓨터와 프린터를 판매 하기에 이르렀다. 

이당시 삼성전자에서는 컴퓨터 보다는 모니터를 더 많이 판매 하였고, 레이져프린터를 판매 하였지만, 아직은 

안정적인 성능에 못미쳐서 많은 고생을 했다.  현재까지도 삼성전자 대리점을 하고 있으니, 거의 30년간을 

삼성전자와 인연을 맺고 있다.  이 레이져프린터는 며칠전에 모 대학에 켬퓨터 설치를 하러 갔다가, 교수님 

연구실에서 발견한 것인데, 30년전에 내가 판매한 그 프린터인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  보자마자 마구

찍어댔다. 교수님이 오히려 더 놀란 눈치 였다. 사정을 듣고나서, 오히려 교수님께서 더 반가와 해 주셨다. 

 

1988년 11월에 컴퓨터와 인연을 맺어온 나는 그렇게 아직도 컴퓨터와 함께 살아 가고 있다. 그 삼십여년의

컴퓨터 역사는 아직도 내 가슴속에 그렇게 새겨져 간다.  베이비부머들이 만들어 놓은 IT시대의 기초, 

하지만, 이제 모두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나라 IT발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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